첩장 뜻 : 의미와 역사 및 현대판 첩장

첩장 뜻 : 의미와 역사 및 현대의 첩장 문화 | 우리 문화에는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관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첩장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셨을텐데 첩장 뜻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한자어인 첩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첩장의 뜻과 유래,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첩장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첩장 뜻

첩장 뜻

첩장 뜻을 살펴보면 한자어로 ‘첩(疊)’은 ‘겹치다, 포개다’라는 뜻이고, ‘장(葬)’은 ‘묻다, 장사지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첩장이란 하나의 묘에 여러 관을 겹쳐서 묻는 것을 말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책을 만드는 방식 중 하나인 ‘첩장’이 있습니다. 이는 두루마리 형태로 길게 이어진 종이를 적당한 폭으로 접어서 병풍처럼 만들고, 앞뒤로 표지를 붙여 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첩장 뜻은 크게 두가지 뜻이 있으니 상황에 맞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파묘의 인기로 인해 첫번째 의미로 많이들 찾으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첩장의 역사와 유래

첩장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제지술과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첩장 기술도 크게 발전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서화를 관리하는 도화서라는 기관에 첩장을 담당하는 ‘배첩장’이 있었습니다. 배첩장은 그림과 글씨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보존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죠.

한편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명당자리에 묘를 쓰기 위해 남의 묘 위에 몰래 묘를 쓰는 첩장 관행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묘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첩장의 문화사적 의미

첩장은 단순히 묘를 쓰는 방식을 넘어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습니다. 첩장이 성행했던 시대에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적이었고, 조상의 묘를 잘 모시는 것이 자손된 도리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동시에 음택과 풍수에 대한 믿음도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자리에 묘를 쓰면 후손들이 번창할 것이라는 생각에 명당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던 것일 것입니다.

첩장은 양반 계급의 특권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았는데요, 양반들은 자신들의 묘가 명당자리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하층민의 묘는 마음대로 파헤쳐도 된다고 여겼던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첩장은 당시의 신분제 사회와 양반 중심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첩장의 성행과 쇠퇴 과정은 사회 변화상과 맞물려 있는 셈인것입니다.

오늘날 첩장은 사라져가는 문화 현상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유교 문화와 신분제, 풍수지리설 등 우리 전통사회의 특징이 녹아 있습니다. 첩장을 통해 선조들의 삶의 모습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와 드라마 속 첩장

첩장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도 종종 활용됩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파묘’에서는 첩장이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게 됩니다. 묘 아래 묻힌 관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룬 공포 스릴러물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첩장이 등장하곤 합니다. 주로 왕위 계승이나 가문의 비밀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첩장이 나오죠.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묻는 행위로 그려지면서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현대판 첩장 납골묘와 수목장

현대판 첩장

현대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첩장은 많이 사라졌지만, 새로운 형태의 첩장 문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납골묘와 수목장이 그것입니다.

납골묘는 화장한 유골을 납골당이나 납골묘에 안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묘지에 여러 분의 유골을 모시는 것이죠. 수목장은 화장한 유골을 나무 주변에 묻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장례 방식입니다.

이런 새로운 장묘 문화는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매장 문화를 대신해 고인을 기리면서도 공간 활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죠.

첩장의 문제점과 폐해

전통 사회에서 첩장은 주로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첩장 관행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기도 했습니다.

우선 첩장은 선조의 묘를 훼손하고 조상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묘를 파헤치고 다른 이의 관을 묻는 것은 조상 숭배 사상이 강했던 당시 사회에서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첩장으로 인해 묘지를 둘러싼 분쟁과 소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묘지를 놓고 여러 집안이 서로 자기 선조의 묘라고 주장하면서 충돌했던 것이죠. 이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첩장은 묘지 공간의 낭비를 초래했습니다. 한 묘역에 여러 개의 묘가 들어서면서 묘지가 과도하게 조성되었고 이는 국토 이용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첩장 관행의 개선 노력

첩장의 폐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첩장을 금지하는 법령이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1740년 영조는 첩장금지령을 내려 타인의 묘 위에 묘를 쓰는 것을 엄격히 금했습니다. 이후에도 첩장을 막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었지만 뿌리 깊은 관행을 완전히 없애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화장 및 납골 문화가 확산되면서 첩장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추세입니다. 전통적인 매장 방식에서 벗어나 납골묘나 수목장 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도 화장 및 납골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묘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선진적인 장묘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첩장 뜻 마무리

지금까지 첩장 뜻을 알아보고 첩장의 다양한 의미와 역사,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모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첩장 뜻은 묘를 쓰는 방식이기도 하고, 책을 만드는 기술이기도 하는데 둘 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첩장 뜻을 통해 조상님들이 살아왔던 방식을 이해하고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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