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항복으로 8월 15일 광복을 맞았으나,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들어오며 분단의 길로 들어섰다.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 미군정, 귀국한 이승만과 임시정부 요인 등 여러 세력이 새 나라의 주도권을 다퉜고, 연말에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이 큰 논란을 낳았다.
그해의 세상
8월 15일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한국은 35년간의 일제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다. [출처]
8월 15일여운형과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해 치안 유지와 새 국가 수립 준비에 나섰다. [출처]
9월 6일건국준비위원회가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출처]
9월 8일존 R.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24군단이 인천에 상륙했고, 이후 미군정이 1948년 8월까지 남한을 통치했다. [출처]
10월 16일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이 33년 만에 귀국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출처]
11월 23일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제1진이 중국에서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다. [출처]
12월 27일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가 한반도 임시정부 수립과 최장 5년의 신탁통치 방안에 합의해, 국내에서 거센 반탁 운동이 일어났다. [출처]
『조선말 큰사전』 원고 발견 —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본 경찰에 압수됐던 사전 원고가 9월 8일 경성역 창고에서 발견됐다. [출처]
연도 리그: 최고의 해
출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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