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문민정부와 IMF 위기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군인 출신이 아닌 국민이 세운 정부라는 뜻의 ‘문민정부’를 내세우며 금융실명제 등 개혁을 추진했다. 1996년 OECD에 가입했지만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 참사도 잇따랐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기업 부도와 대량 해고가 이어졌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어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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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No Gun Ri survivors read petition-1999-b사진: No Gun Ri International Peace Foundatio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M2A2 Bradley from 2-9 INF, 2ID engaging targets are Rodriguez Range, South Korea in 1996
1990년대 한국M2A2 Bradley from 2-9 INF, 2ID engaging targets are Rodriguez Range, South Korea in 1996사진: SSG Rodney Stanfield, USA.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Kim Dae-jung, 1998-Jan-5
1990년대 한국Kim Dae-jung, 1998-Jan-5사진: SGT OLGA L. STEIERT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Seoul 1999-09-29
1990년대 한국Seoul 1999-09-29사진: Sharon Hackett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Li Shuzheng 19950329
1990년대 한국Li Shuzheng 19950329사진: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Korea’s National Archives) · KOGL Type 1 · Wikimedia Commons

해마다

1990년의 한국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9월 처음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소련과 수교하는 등 북방 외교가 진전되었다. 9월 한강 대홍수로 큰 피해가 났고, 10월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1991년의 한국

3월과 6월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어 30여 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12월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되는 등 남북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92년의 한국

8월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중화민국)과는 단교했고, 우리별 1호 발사로 첫 인공위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냈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대중음악이 크게 변화했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3년의 한국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며 이른바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 조치가 잇따랐다. 대전 엑스포에 전국의 관람객이 몰렸지만, 열차·항공기·여객선 사고가 연이어 일어난 해이기도 했다.

1994년의 한국

김일성 사망으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며 한반도 정세가 요동쳤다. 성수대교 붕괴를 비롯한 대형 사고가 잇따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고, 농구 드라마와 신세대 가요 등 젊은 대중문화가 활기를 띠었다.

1995년의 한국

첫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며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고,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됐다. 대구 가스 폭발과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참사가 이어졌으며, 연말에는 두 전직 대통령이 잇따라 구속됐다.

1996년의 한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가 확정되는 등 국제적 위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한편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안보 불안이 커졌고, 연말 노동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싸고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다.

1997년의 한국

연초 한보그룹 부도를 시작으로 대기업들이 잇따라 무너졌고, 11월에는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며 선거를 통한 첫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1998년의 한국

외환 위기의 여파로 기업 구조조정과 대량 실직이 이어졌고,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 대북 화해 정책을 펼치면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박세리의 우승과 PC방·스타크래프트 열풍이 화제가 됐다.

1999년의 한국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는 회복세 속에 인터넷과 벤처 창업 열기가 뜨거웠다. 서해에서 남북 해군이 교전했고, 화성 씨랜드와 인천 인현동 화재 등 어린이·청소년이 희생된 참사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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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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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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