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한국: 광복과 분단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 남쪽에는 미군이 주둔하며 나뉘었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을 두고 찬탁과 반탁으로 갈라져 이념 갈등이 깊어졌고, 미소공동위원회도 결렬되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7월 17일 헌법을 공포하고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 분단이 굳어졌다.




해마다
1945년의 한국
일본의 항복으로 8월 15일 광복을 맞았으나,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들어오며 분단의 길로 들어섰다.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 미군정, 귀국한 이승만과 임시정부 요인 등 여러 세력이 새 나라의 주도권을 다퉜고, 연말에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이 큰 논란을 낳았다.
- 8월 15일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한국은 35년간의 일제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다.
- 8월 15일여운형과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해 치안 유지와 새 국가 수립 준비에 나섰다.
- 9월 6일건국준비위원회가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1946년의 한국
미군정 아래에서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 대립이 격화됐고,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던 미소공동위원회는 성과 없이 휴회했다. 중도 세력의 좌우합작운동이 시작됐지만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 등으로 사회 갈등이 깊어졌으며, 연말에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문을 열었다.
- 3월 20일한반도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덕수궁에서 열렸으나 5월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 5월 15일수도경찰청이 조선공산당 관계자들이 정판사에서 위조지폐를 찍었다고 발표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불거졌다.
- 7월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파가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해 좌우 통합 정부 수립을 모색했다.
1947년의 한국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다시 열렸지만 결렬됐고,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넘겨 유엔 감시하 선거와 정부 수립의 길을 열었다. 좌우합작을 이끌던 여운형이 암살되고 제주에서는 3·1절 발포로 긴장이 높아지는 등 정국이 불안했지만,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 3월 1일제주에서 3·1절 기념 행사 중 경찰 발포로 민간인이 희생돼, 이후 제주 4·3 사건으로 이어지는 갈등의 기점이 됐다.
- 5월 21일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됐으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 7월 19일좌우합작운동을 이끌던 여운형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됐다.
1948년의 한국
유엔 감시하에 남한에서만 5·10 총선거가 치러져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7월 17일 헌법 공포에 이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북쪽에서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며 분단이 굳어졌고, 제주 4·3 사건과 여수·순천 사건 등 큰 유혈 사태가 이어졌다.
- 4월 3일제주에서 남로당 무장대가 경찰지서 등을 습격하며 제주 4·3 사건이 시작됐고, 이후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
- 4월 19일김구와 김규식 등이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에 참석했다.
- 5월 10일제헌국회를 구성할 국회의원을 뽑는 5·10 총선거가 실시됐다.
1949년의 한국
정부 수립 이듬해로, 농지개혁법 제정과 공군 창설 등 국가 체제 정비가 이어졌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경찰의 습격을 받아 친일 청산이 좌절되고, 국회 프락치 사건과 김구 암살이 잇따르며 정치적 긴장이 커졌다.
- 5월 20일검찰이 남로당 프락치(공작원)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면서 국회 프락치 사건이 시작됐다.
- 6월 5일좌익 전향자를 관리·통제하기 위한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됐다.
- 6월 6일무장경찰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를 습격해 특위 요원들을 체포했다.
옛 사진 아카이브
출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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