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 아래에서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 대립이 격화됐고,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던 미소공동위원회는 성과 없이 휴회했다. 중도 세력의 좌우합작운동이 시작됐지만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 등으로 사회 갈등이 깊어졌으며, 연말에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문을 열었다.
그해의 세상
3월 20일한반도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덕수궁에서 열렸으나 5월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출처]
5월 15일수도경찰청이 조선공산당 관계자들이 정판사에서 위조지폐를 찍었다고 발표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불거졌다. [출처]
7월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파가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해 좌우 통합 정부 수립을 모색했다. [출처]
8월 22일‘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공포되어 경성대학 등을 통합한 국립서울대학교가 세워졌다. [출처]
9월 24일부산 철도 노동자 파업에 이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주도로 전국적인 9월 총파업이 벌어졌다. [출처]
10월 1일미군정하의 대구에서 식량난과 경찰 발포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나 남한 각지로 번졌다(대구 10·1 사건). [출처]
Korean Shoemaker in Seoul (1946)사진: United States Army Signal Corps; Harry S. Truman Library &…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Emperor's Palace in Seoul, Korea (May 1946)사진: United States Army Signal Corps; Harry S. Truman Library &…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Demonstration in support of the US-Soviet Joint Commission2사진: Korean People Journal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View of Seoul, Korea (May 1946)사진: United States Army Signal Corps; Harry S. Truman Library &…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10월 1일나치 독일 전범을 심판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판결 선고로 마무리됐다. [출처]
그해의 노래·드라마·유행
영화
영화 「자유만세」 — 최인규 감독이 광복 후 처음 만든 본격 극영화로, 독립운동가의 투쟁을 그려 큰 흥행을 거뒀다. [출처]
연도 리그: 최고의 해
출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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