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의 한국
중국군의 공세로 1·4 후퇴가 이뤄져 서울을 다시 빼앗겼다가 3월에 되찾았고, 이후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교착됐다. 7월부터 휴전 회담이 시작됐으나 전투는 계속됐으며, 거창 양민 학살과 국민방위군 사건 등 전쟁 중의 참상과 부패가 드러났다.
그해의 세상
- 1월 4일중국군의 공세에 밀려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내주고 후퇴했다(1·4 후퇴). [출처]
- 2월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이 공비 토벌을 명목으로 주민들을 학살한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출처]
- 3월 15일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되찾았다. [출처]
- 4월 30일간부들의 국고 횡령으로 많은 병사가 굶주리거나 숨진 국민방위군 사건이 드러나 국회가 국민방위군 해체를 결의했다. [출처]
- 7월 10일전쟁을 멈추기 위한 휴전 회담이 시작됐다. [출처]
- 12월 17일이승만을 당수로 하는 자유당이 창당됐다. [출처]




한국 전쟁 (1950–1953) · 옛 사진 아카이브 →
광고
세계에서는
- 9월 8일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과 일본이 강화 조약에 서명했다. [출처]
연도 리그: 최고의 해
출처·참고
항목마다 붙은 [출처] 링크는 위키백과 문서입니다. 위키백과 내용은 CC BY-SA 라이선스를 따릅니다.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에서 가져왔으며, 사진마다 적힌 작가와 라이선스를 따릅니다. 사진을 누르면 원본 파일 페이지로 갑니다. 위키백과에서 이 해 더 보기
1950년대 · 전쟁과 휴전
- 1946한반도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덕수궁에서 열렸으나 5월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 1947제주에서 3·1절 기념 행사 중 경찰 발포로 민간인이 희생돼, 이후 제주 4·3 사건으로 이어지는 갈등의…
- 1948제주에서 남로당 무장대가 경찰지서 등을 습격하며 제주 4·3 사건이 시작됐고, 이후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
- 1949검찰이 남로당 프락치(공작원)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면서 국회 프락치 사건이 시작됐다.
- 1950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한반도를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선언을 발표했다.
- 1952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한반도 주변 해양에 대한 주권을 선언하는 평화선을 선포했다.
- 1953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던 여객선 창경호가 다대포 앞바다에서 침몰해 300명 안팎이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 1954제3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가 실시돼 자유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 1955정부가 일본 제품의 특혜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 1956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가 호남 유세를 위해 열차로 이동하던 중 숨졌다.
광고



